“나는 누구인가”
- 유예린

#생명체거주가능영역 #연기자 #현실속연극 #타인이원하는이미지 #정체성 #삶의주인공​​​​​​​
작가소개
때때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지나친 노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소유하는 것이 작가로서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유예린 _ YU, Yearin
b.1995

학력
2018 한남대학교 회화과 졸업

전시

개인전
2021 《성인을 위한 조립 프로젝트》,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0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공주문화예술촌, 공주, 한국
2019 《해체: 불협의 기록》, 공주문화예술촌, 공주, 한국
 
단체전
2021 《15,00ARTIST》,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1 《GOLDCANARTPLAN》, 서궁갤러러카페, 서울, 한국
2021 《GAMYOUNGGIL DRAWING》,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1 《어버이》, 대안공간 기묘, 서울, 한국
2021 《봄빛 현대미술展》, 리수갤러리, 서울, 한국
2021 《TWO 명인간》,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0 《see∩8》,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0 《작은 미술관 지역작가 임차작품 전시展》, 충청남도청 작은 미술관, 홍성, 한국
2020 《Gam Young Gil Drawing 2020》,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20 《제 4 회 정통판화展》, 에코락갤러리, 서울, 한국
2019 《겨》, 공주문화예술촌, 공주, 한국
2019 《아트락페스티벌》, 스타필드 고양, 고양, 한국
2019 《아시아프&히든아티스트·디디피 영 디자이너 챌린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 한국
2018 《진선미전》,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18 《감영길을 그리다展》, 이미정갤러리, 공주, 한국
2018 《Zebra Art Fair 2018》, 대안공간 눈, 수원, 한국
2018 《한남아트프로젝트 청춘여명》, 에코락갤러리, 서울, 한국
2017 《한남아트프로젝트 청춘樂喜》, 갤러리 훈, 서울, 한국
2017 《존재와 부재전》, 한남대학교, 대전, 한국
2017 《다시 봄》, KBS 대전방송총국, 대전, 한국


레지던시
2018~2020 공주문화예술촌 3, 4 기, 공주, 한국


작품 소개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사회 관습에 맞추어 타인을 인지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에 대상의 본질을 멋대로 추측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 작업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감추면서 생긴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나의 정체성과는 상반된,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데서 오는 괴리감을 연극과 연기라는 소재로 표현한다. 이는 사회에 맞게 만들어진 모습으로 인해 본래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기 전에 나를 더 탐구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자 함이다. 또한 나 말고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고 사회 규율과 고정관념에 맞추어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작업을 풀어나갔다.
 
작업은 현실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숨기고 사회에서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현대인을 그린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은 묘한 표정의 주인공들은 무대 위에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 자신의 배역에만 집중하고 있어 피상적으로만 관계한다. 과장을 넘어 우스꽝스럽기도 한 그들의 몸짓은 연극성을 극대화한다. 이들의 과한 작태는 저마다 내면의 괴리를 감추려는 행동이다. 그중에서도 무대의 한가운데 내장을 드러내 보인 사람은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나의 자화상이다. 그는 내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연기 중인 배우들에 둘러싸여 불안에 떨고 있다. 각 배우들은 나를 지칭함과 동시에 자신을 감추고 연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Goldilocks planet 
2019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47ⅹ227cm
작가노트(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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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학원 친구에게 누나라고 부르고 싶었다. 언젠가 그 친구에게 장난하는 척 누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친구는 “누나라고 부르면 안 돼, 그건 남자들이 부르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 순간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절망이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난 이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렇게 친구가, 어른이, 사회가 말하는 대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근거는 내 몸뚱이였고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 공간에서 소외되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래도 이 정도면 잘난 얼굴과 몸이니 그것이라도 즐기며 살자고 세뇌했다. 지속적으로 자기혐오만 쌓여간다.
우연히 한 공연을 관람했다. 진한 화장을 한 주인공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무대 위를 실감 나게 뛰놀았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장식이 모두 내려지고, 다른 연기자와 함께 인사하는 저분은 내가 아까 봤던 그 주인공이 아니었다. 한 공간 위에 같은 얼굴이지만 단지 무대가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다니. 그 괴리감은 나와 비슷했다. 
언젠가부터 내 삶에 연극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연기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잣대로 나를 대했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존재했다. 나의 화장은 견고해지고, 나 자신을 위한 방패는 커진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은 가끔 나를 흔든다. 상대방이 건넨 대본에 맞추어 연기하는 내가 나일까. 아니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비밀이 나일까. 나는 살기 위해 자기합리화를 선택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껍데기는 붉고도 검은 무대 위에 서성인다. 
간혹 나에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회에 섞여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각각 본인이 생존하기 위한 대본을 읽고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나는 숨어버리고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저 행동과 표정에서 어디까지가 그의 본질인지 알 수 없어졌다. 이런 삶은 전체적으로 보면 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진짜 자신은 대본 밑에서 겨우 숨 쉴 뿐이다. 
모두들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나 혼자만 연기를 하고 있을 수 있다. 진실되지 못한 삶은 자욱한 수렁의 구덩이에 갇혀 버렸다. 배우들은 단지 제 할 일을 할 뿐, 서로를 믿지 못한다. 함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그들은 이 공간에 존재할 뿐이다. 나의 가면과 타인의 가면이 맞붙으며 서로를 경계한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불안감과 상실감만 점점 늘어난다. 이곳은 홀로 선 무대이다. 
내 정체성의 고민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에서 시작된 작업은 이윽고 사회인으로서 솔직하게 개인성을 표출할 수 없는 사람들이 겪는 내적 불안을 함께 드러낸다. 스포트라이트 속 묘한 표정의 주인공들. 무대 위에 인물들은 함께 있지만, 모두들 자신의 배역에만 집중하고 있어 피상적으로만 관계한다. 과장을 넘어 우스꽝스럽기도 한 몸짓은 화면 속 연극성을 극대화한다. 이들의 오버스러운 작태는 그들 내면의 괴리를 감추려는 행동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나, 때로는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무대 위 배우의 모습은 결국 자화상으로 귀결되며, 어떤 이유로든 대본을 읽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제는 고유한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좀 더 솔직해져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스스로 마주 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을 바라보는 건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다. 
이것은 연극의 주인공이 아닌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가끔 공연이 끝나고 인사하는 그 연기자가 생각난다. 모든 극을 끝마치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야말로 진짜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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