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당신이 핸드폰에서 무엇을 봤는지 기억 하시나요?”
설고은
#화면 너머의 세계 #스마트폰 #이미지와 정보의 범람 #공간의 재구성 #기억
작가소개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흔들리는 우리의 삶에서 아직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것들 또는 표현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 작업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설고은 _ SEOL, Gwen
b.1994
학력
2021 서울대 서양화과 석사 졸업
2017 University of Chicago Economics, Visual Arts 학사 졸업
전시
2020 《정보의 하늘에 가상의 그림자가 비추다》, 아트스페이스 3, 서울, 한국
2019 《X가 X인 동시에 X가 아닌》, 우석갤러리 서울, 한국
2018 《there & now》, 레드엘 갤러리, 대전, 한국
2017 《Yummy Yummy》 Reva and David Logan Center for the Art, 시카고, 미국
2016 《DAD’S MAD》, Bleeding Heart Gallery, 시카고, 미국
수상 선정 레지던시
2020 호암교수회관 창작지원상, 서울, 한국
2017 LAUNCH Invitational Residency, Chicago Artists Coalition, 시카고, 미국
2017 Louis Sudler Prize in the Creative and Performing Arts, 시카고, 미국
2016 University of Chicago Arts Summer Fellowship, 시카고, 미국
작품 소개
나는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현대인의 삶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화면 너머 무한한 가상공간이 납작한 평면 화면 위에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추상적인 회화 언어로 시각화한다. 지난 2년간 가상의 세계를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면, 올해는 기억 속에 남은 잔상에 집중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작품으로 가상과 현실,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부유하는 동시대의 감각을 표현한다.
작품은 2021년 2월부터 4월까지 핸드폰을 사용한 이후 기억에 남은 잔상을 기하학적 공간으로 재구성한 모두 같은 크기(97x162cm)의 연작이다. 화면 밖 가상의 세계에서 얻는 경쾌함, 시공간의 경계를 초월해 도처에 범람하는 이미지와 정보들이 불러일으키는 불안함을 전달하기 위해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고 이미지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저마다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각각의 시각적 요소들은 주어진 크기의 평면 안에서 유희적으로 재조립된다. 그것들이 합쳐져 나의 의식과 무의식 속 시간과 공간의 기억에 따른 서사를 만든다. 이후 반복하고 변주하는 과정을 거쳐 나의 사적인 사색과 잔상으로 남은 기억을 캔버스 위에 기록한다.

올렸다 내렸다 올렸다 다시 내렸다 내렸지만
내림과 상관없이 기어코 누군가가 다시 올리고 말았다
Upload, Download, Upload, and then Download
but Despite My Download Someone Decides to Upload, 2021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Acrylic on Canvas 97cm x 162cm
작가노트(작품론)
2009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멀리 공부하러 가는 자식을 위해 부모님 이 사준 내 생애 첫 스마트폰과 함께. 이를 교육적이고 유익한 목적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겠다고 다짐 했던가. 그러나“유용”은 눈앞에 당면한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유혹하듯 반짝이는 이미지들 앞에서 쉽게 잊히는 가치이기 마련이다. 화면 위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들을 바라볼 때면 현실 공간과 나를 단단히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은 희미해지고, 두둥실 떠오른 몸은 화면 너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광활한 가상공간에서 시공간의 구획을 벗어나 범람하는 이미지들을 스쳐 지나가며 무언가 영원히 잃어버린 것만 같은 것을 찾아 헤맨다. 아마도 그 것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결핍을 애써 잊으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한 희망과 애잔한 마음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또 무엇을 읽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분명 생각을 하는데…기억나는 게…뭐더라?
전원이 꺼진 핸드폰의 까만 화면을 보고 있을 때면 현실의 축축한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혼자라는 불안함을 잊기 위해 매 초, 매 시간, 현란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화면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의미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이미지를 재생하 며, 활자의 무의미한 나열을 스친다. 어젯밤, 내가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지 않기를. 목적지 없이 헤매는 무의미한 서성임이 남긴 것은 화면을 오래봐서 욱신거리는 눈알과 흐릿한 시야, 그 리고 빛무리와 같은 화면의 잔상뿐이니. 쉽고, 말초적이고, 간단한 정보의 파편을 추구하는 것은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피로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 위엔 계속해서 무언가가 떠오르고, 고정되 지 않으며 표류하는 것들은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면, 화면에서 보는 이미지들은 내가 느낀 불안의 형태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나는 뭉게진 빛 덩이와 같은 잔상으로 남은 것들을 분해하고 해체하며, 그 속성을 분석하여 내 가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재조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강렬하고 선명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 마모되어 희미해지기를 기다리고, 의식의 경계에서 흐릿한 덩어리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다. 대부분은 이러다 사라지지만, 어느 순간 놀랍도록 선명하고 단단한 구체성을 가지고 의식의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것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온 것들이 하나 의 단단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작업은 이것을 잘게 쪼개서 어떻게든 소화해보려는 노력이고, 작 업의 이미지는 이것을 쪼갠 단면의 모습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는 상상력에 고삐를 매어 현실의 중력 에 단단히 옭아매기 마련이다. 화면 너머의 세계가 가진 비현실적인 공간성을 생각해보면, 이를 재구성하기 위해선 보자마자 무엇이 떠오르는 이미지들보다 기하학적 형상들과 추상 패턴이 역 시 좋겠다. 화면에서 내가 보았던 것들의 색을 추출해 가공한다. 저마다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요소들을 작은 단위로 분해한다. 하나의 유닛을 반복해 여럿을 만들고, 이들을 곧 다른 크기와 색깔로 변주한다. 넓힌다. 쌓는다. 겹친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우연하게 관계하며 만들어내는 가 변적인 공간을 상상하며 주도면밀한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 많은 것들이, 무수히 여러번 나타났다 사라졌던 것과 비슷 하다